봉화 만산고택

고색창연한 현판이 가득한 봉화군 춘양면 만산고택

송이향기 솔솔한 산마을에 노을빛춘양목으로 단아한 한옥을 앉힌 고택이 있습니다. 그 나무로 조상의 신주를 만들고 건물마다 아취 넘치는 이름을 판가해 걸고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다 못해 국은 회복을 빌었던 조선 말 선비 만산 강용(晩山 姜鎔, 1846~1934) 선생이 살던 고택에서 하루밤을 보내니 명인들의 화려한 현판 글씨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대기만성의 큰 인물이라는 뜻을 가진 만산이라는 아호는 강용선생님의 절친한 벗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호를 내리면서 써준 글씨입니다. 사랑채에 시원한 글씨체로 걸려있습니다. 만산은 한일합방이 되자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때부터 만산이라는 호 대신 정와(靖窩)라는 ㅋ호를 썼다고 합니다.. 나라 잃은 부끄러움으로 바깥세상과는 등지고 오직 자연과 벗하면서 자성하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랑채 한 편에는 2칸짜리 소박한 서실이 있는데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고 쓴 필체는 영친황이 8세 때 썼다고하니 믿기지 않는 달필입니다. 한묵청연은 고아한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이 있는데 종부에말에 의하면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면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하네요. 아마도 그래서 이 댁의 자녀분들이 공부를 잘했는듯 싶다.

이미 하루 숙박을 하고 떠난 방에 들어가보니 동쪽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방안 가득차 있는데 그 색감이 아름다웠다.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빛이 방안 가득하다.

아침이면 늘 마당에 나와 어제밤에이 집에서 기거한 사람들과 인사하는 종손 강백기씨, 단지 인사만 하는게 아니라 집과 가문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십니다. 아마도 이런 설명이 없었다면 현판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봉화에 있는 큰 고택으로만 기억에 남을뻔 했습니다. 또한 여행을나가는 사람들에게 가는곳을 물어보고 길 안내도 해주고 답사를 오신분들에게는 그 지역에서 가장 잘 하는 해설사들을 소개해 주십니다.

종손 과  종부 유옥영씨 그리고 노모 이원남 할머니 마지막으로 행낭채에 홀로 살고 계시는 이 지역 할머니까지 만산 고택에는 현재 4분이 살고 있습니다. 종손께서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외에는 계속 고향에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이른나이에 부친을 잃어 집을 지켜야만했고 흩어진 글을 모아 문집도 만들고 망가져가는 고택 보존을 위해 문화재로 지정시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집을 지켰던 종손입니다 2004년부터 한옥 민박으로 집을 개방하여사람 없는 죽어있는 집이 아닌 생기있는 고택을 지켜나가고 계십니다. 

이런 모습은 나라를 잃었을때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만산의 충절이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만산의 외아들 강필(1878~192)은 논밭을 팔고 근검절약하여 제 강점기에 3,000원을 독립자금으로내놓은 사릴이 일본 경찰에 알려져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1929년 손자 강만원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선봉에 서다 구속되기도 했다니 전통과 가문의 맥은 부정할 수 없는듯합니다.
사랑채 동편에 있는 별채 '칠류헌'은 당대의 명필 해강 김규진의 글씨입니다. 도연명의 시구 오류(五柳)에서 이류(二柳)를 더해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의 일곱 자리의 별이름. 별당에 있는 현판 '자미원'에는 나라 찾는 마음이 하루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만산의 애타는 실려 있고 '백석산방'(白石山房)과 옥람 한일동이 쓴 '사물재'(四勿齋)라는 글은 보는 이름 심오한 문자의 세계로 이끄네요. 모든 현판들의 글씨에 개성이 넘쳐납니다. 칠류헌은 나직한 샛담과 일각문을 달아 손님이 기거하기 편하게 되어 있고 칠류헌 전체를 15만원에 빌려줍니다. 큰 방이 여러개에 입식 부엌까지 있어 10명 이상이 와도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안채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좀 아쉽워 보입니다. 원래 한옥 안채는 마사토가 깔려 들어오는 빛이반사되는 간접 조명으로 안채 깊숙히 빛을 전달해 주는데 아마도 생활편의를 위해 시멘트 처리를 한것 같다. 만산 고택은 전형적인 경상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전방에 사랑채가 그뒤로 ㅁ자 형식의 안채, 이런 구조는 사랑채가 바람을 막아주는 추운지방의 특징이다. 만산 선생이 130여 년 전에 춘양목으로 지었다. 지금은 마구간과 방앗간이 허물어져본래의 99칸 중에 80칸이 남아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날 늦게 만산고택에 들어왔는데종부께서 방문을 열어주며 추울까봐 미리 전기판넬을 켜놓았다고 하고 우풍이 있을지 모르니 이불 차지말고 자라며 걱정을 해주신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30분 동안 집 안의 내력이며 취미생활까지 대화를할 수 있었다. 이런게 사람사는 한옥 민박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닌듯싶다. 예전에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침을 차렸는데 큰 종부께서 노환으로 기억을 읽어가면서 곁을 떠날 수 가 없어 동네 식당을 저녁에 아침예약을 해준다고 한다. 또한 외아들은산업은행에서 일하고 있는데 은퇴후에는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집안을 지킬거라고 하며 며느리도 이 집을 너무나 좋아하다고흐믓한 미소를 지으신다. 취미 생활로 도자기를 빚어서 사랑채에 장식도 하신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 사랑채 앞에 있는 화분에 키우고 계신다. 약 200여 종이 있는데 지난 겨울에 많이 죽었다고 한다. 아침에는 화분 하나 이름을 가르쳐 주시는데 재미있는 이름이 많았다. 특히나 나도~로 시작하는 풀들이 있는데 나도송이풀, 나도 냉이도 있다는게 너무나 재미있었다.  

전통 음식과 떡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발견한 떡시루,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떡시루라고 말하는데.... 아마더 큰 시루도 많을것 같지만 인정해주고 넘어간다. 아마 고택에 잔치를치를때면 이 떡시루 가득히 떡을 만들었을것 같다.

영남 최고의 만석꾼 집안인데 해방후 토지개혁을 하면서 많은 땅이 지역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지금은 한옥 민박으로 연 1000만원 정도 벌어 남아있는 땅 경작하는데 사람쓰는 비용으로 쓴다고 한다.이렇게 말하시면서도 얼굴이 구김하나 없이말하신다. 아마 현실에서 여행 온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야생화도 키우고 도자기도 만들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계신것 같다. 

떠나기 전에 발견한 발견한 예쁜 야생화 종부에게 물어보니 미국여행갔다가 너무나 예뻐서 씨를 받아왔는데 이름은 모른다고 하신다. 큰 집안의 종부이신데 마치 옆집 이웃처럼 너무나 편하게 대해주시는 이집 두 주인 내외분을 대화를 하면서2000평이 넘고 거대한 한옥 집에 훌륭한 현판보다 한옥 민박을 지키시는 두 분 내외분과 즐겁게 대화할수 있는 이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봄이면 야생화가 많이 펴서 아주 이쁘다고 하는데 그 때쯤 다시 와봐도 좋을듯...